• 2025. 5. 10.

    by. goodppls

    밥이 식지 않는 그릇,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그릇, 금속이지만 따뜻한 온기를 가진 그릇. 이것이 바로 전통 금속공예의 결정체인 유기(鍮器)입니다. 유기는 조선시대 상류층에서부터 일반 가정까지 널리 사용된 금속 식기이며, 이를 만드는 장인이 바로 유기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유기장의 직업적 정의, 유기의 재료와 제작 방식, 기능과 문화적 의미, 문헌과 유물 속 흔적, 그리고 현대 전통공예와의 연결까지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목차

     


     

    1. 유기장이란 누구인가?

    유기장(鍮器匠)은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합금으로 만든 전통 놋그릇, 놋수저, 제기, 향로 등을 제작한 금속공예 장인입니다. 유기는 흔히 '방짜유기'라고도 불리며, 망치로 두드려 형태를 잡는 수공예 기술이 핵심입니다. 유기장은 단순 주물공이 아니라, 금속 배합, 열처리, 단조, 연마까지 전 공정을 책임지는 숙련 장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대개 가문 대대로 기술을 전수하며, 마을 단위로 유기촌을 이루고 공동 작업장을 운영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기를 제작해 궁중, 사대부, 서민가에 공급하였고, 일부 유기장은 왕실에 납품하여 벼슬을 받기도 했습니다.

     

    2. 유기의 정의와 금속적 특징

    유기란 구리(Cu)와 주석(Sn)을 일정 비율로 섞은 합금을 가열해 만든 전통 금속제품을 뜻합니다. 현대적으로는 '청동'이나 '황동'의 일종으로 분류되지만, 유기만의 특징이 존재하며 유기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음식의 온도 유지 : 열 보존력 우수 (밥, 국이 쉽게 식지 않음)
    • 항균 기능 : 금속 이온으로 세균 번식 억제
    • 중금속 미검출 : 납, 카드뮴 등 유해물질 없음
    • 수명 지속성 : 100년 이상 유지 가능
    • 맑은 음색 : 향로, 방울, 종 등의 소리 그릇으로 사용됨

    이러한 특성 때문에 유기는 단순 식기 그 이상으로 제사, 불교, 관청용 도구로 폭넓게 활용되었습니다.

     

    3. 유기 제작 과정과 기법

    유기 제작에는 방짜유기(망치로 두드리는 방식)와 주물유기(거푸집에 녹인 금속을 부음)의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하며, 그중 방짜유기는 훨씬 정교하고 고급 기술로 간주되었습니다. 방짜유기의 제작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금속 배합 : 구리 78~80%, 주석 20~22% 비율로 섞음
    2. 주괴 주조 : 합금을 녹여 주괴(덩어리)로 만든 뒤 냉각
    3. 가열과 단조 : 주괴를 달군 후 망치로 수백 번 두드려 성형
    4. 형태 성형 : 접시, 대접, 수저 등 용도에 따라 형태 조정
    5. 열처리 및 연마 : 광택을 내고 표면을 부드럽게 마감
    6. 검품 및 음색 검사 : 정타음을 확인해 금속 균질성 검사

    이 과정에는 1~2명의 장인이 최소 며칠에서 길게는 수십 일간 집중적으로 작업해야 하며,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오차 없이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4. 조선 사회에서의 유기 사용과 의미

    유기는 조선시대 왕실의 식기, 사대부가의 제기, 절에서의 향로, 서민의 수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자체가 신분의 상징이자, 격식 있는 생활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궁중에서는 유기로 만든 수라상기, 다기, 수저 등을 사용했으며, 사대부 가문에서는 제례 시 유기 제기를 갖추는 것이 필수 예절로 여겨졌습니다. 서민들도 중요한 의식이나 혼례, 회갑 등의 행사에는 유기 한 세트를 마련해 가문의 보물처럼 소중히 보관했습니다. "놋그릇이 있는 집은 배고프지 않다"는 속담처럼, 유기는 가정의 풍요와 장수를 상징했습니다. 또한 유기는 불에 잘 견디며, 파손되지 않아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세습이 가능한 생활문화재였습니다.

     

    5. 문헌과 유물 속 유기장의 흔적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 등에는 유기장에 관한 간접적 기록이 존재합니다. 특히 왕실 혼례나 제례에 필요한 기물을 제작한 장인 목록에 방짜匠, 놋匠 등의 명칭으로 등장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유기장이 시장에서 직접 유기를 판매하거나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일부 유기장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이름이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통 유기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각 지역 향토유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표면의 망치 자국과 금속 결은 장인의 기술력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유기의 울림을 활용한 불교 의식 방울, 동종, 탁발용 그릇은 종교적 의미까지 품은 공예품으로도 평가받습니다.

     

    놋그릇을 빚은 금속공예 장인 - 유기장

     

    6. 현대에서의 유기 계승과 활용

    오늘날 유기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주, 안성, 진주 등지에서는 활발한 전승 활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 유기는 다시금 전통과 건강식기의 조합으로 주목받으며, 한식당, 호텔, 궁중음식 전문점 등에서 유기그릇을 활용한 고급 상차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공예인들은 유기 기술을 바탕으로 모던 유기 테이블웨어, 조명기구, 인테리어 소품 등 현대 디자인과 접목한 창작 활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기장은 단순한 금속공예 기술자가 아니라, 시간과 온기를 담은 식문화의 예술가로서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전통 장인입니다.

     


     

    맺음말

    1. 유기장은 구리와 주석을 섞은 합금으로 전통 놋그릇을 제작한 조선시대 금속공예 장인입니다.
    2. 유기는 항균, 열 보존, 내구성 등의 기능성과 문화적 상징성을 지닌 고급 생활 공예품이었습니다.
    3. 오늘날에도 무형문화재로 계승되며 현대 디자인과 결합해 전통 식기와 예술품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