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낳은 인쇄 강국 조선. 그 인쇄 혁명의 중심에는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금속활자를 만든 장인, 활자장(活字匠)이 있었습니다. 활자장은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주조, 정밀 가공, 유지·보수까지 담당한 정밀 금속공예 기술자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활자장의 정의와 제작 공정, 금속활자의 구조, 역사적 의의, 기록 속 사례, 현대와의 연결까지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목차
1. 활자장이란 누구인가?
활자장(活字匠)은 조선시대 금속활자를 만드는 전문 기술자입니다. 이들은 납, 주석, 동 등의 합금을 녹여 한 글자씩 정교하게 주조하고, 활자 틀에 맞춰 활자면을 매끄럽게 가공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활자장은 단순한 주물공이 아니라, 서체 구조에 대한 이해, 미세한 금속 가공 기술, 활자 조판 이해도까지 겸비해야 했습니다. 국왕의 명으로 만들어지는 활자는 왕실 문서, 관보, 의학서, 경서 인쇄 등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활자 한 자 한 자에 높은 정밀성과 품격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주자소(鑄字所)라는 관청에 소속되어, 국립 인쇄소의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 지식 전파의 중추를 담당했습니다.
2. 금속활자의 제작 과정
금속활자 제작은 다음과 같은 정밀한 공정을 거칩니다:
- 자형 제작 : 붓으로 한자를 정자체로 쓰고, 이를 목활자나 석고에 음각
- 주형 준비 : 모형을 본떠 활자 틀을 만듦 (모래틀 또는 청동 틀)
- 금속 주조 : 납과 주석, 동을 혼합해 용융시켜 틀에 부어 활자 주조
- 연마 및 가공 :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글자 깊이 조정
- 정렬 검사 : 높이, 각도, 획간 간격을 맞춰 인쇄 적합성 검사
- 보관 및 분류 : 자함에 종류별로 보관하여 인쇄 시 사용
특히 금속 비율 조절과 활자 면의 평형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숙련된 활자장만이 균일하고 정형화된 활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실패한 활자는 다시 녹여 재활용되었고, 높은 효율성과 재사용성이 조선 금속활자의 핵심 강점 중 하나였습니다.
3. 금속활자의 구조와 특징
조선의 금속활자는 정방형의 주조 활자로, 손으로 들고 조합해 찍어내는 활판 인쇄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주요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활자면: 실제 인쇄되는 글자 부분
- 활자배: 손으로 잡거나 조판할 때 맞닿는 평면
- 활자높이: 인쇄 균형을 위한 높이 정렬 기준
- 활자폭: 자간 통일을 위한 표준 규격
조선의 금속활자는 고려 말에 시작되어 조선 초 세종대왕 시기 '갑인자(甲寅字)'를 거쳐 점차 미려하고 인쇄 친화적인 서체로 발전했습니다. 활자장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서체 개선, 인쇄 선명도 향상을 위한 기술을 계속 발전시켰습니다.
4. 조선 인쇄문화에서의 활자장의 위치
활자장은 조선의 인쇄문화에서 실무 핵심 인력이었습니다. 왕실 문서와 관청용 서적, 학문 보급용 경서 등 대부분의 공문서는 활자장들이 만든 금속활자를 통해 인쇄되었습니다. 예문관, 교서관, 간경도감 등 관청은 인쇄물 제작 시 주자소에 활자 제작을 요청했고, 활자장은 출판 물량에 따라 밤샘 작업을 감내하며 정밀하게 활자를 생산했습니다. 이들은 활자 외에도 도장, 표지 인쇄용 인판, 목판화 병렬 제작 등도 병행하며, 조선 인쇄문화의 산업적 체계를 뒷받침했습니다. 활자장이 없었다면, 조선은 세계 인쇄사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 문화국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5. 기록과 유물로 보는 활자장
활자장에 대한 직접적인 이름 기록은 적지만, <세종실록>, <간경도감의궤>, <훈민정음 창제 관련 문서>에는 활자 주조 지시와 감독자, 공정 과정이 상세히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1434년 '갑인자' 주조 당시에는 수십 명의 활자장이 참여했고, 이들은 주조 외에도 금속 가공, 활자 정렬, 서체 정비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했습니다. 현존 유물로는 <직지심체요절>,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등의 활자본과 일부 금속활자가 국립중앙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활자들은 글자 획의 날카로움, 면의 균형감 등에서 활자장들의 높은 기술력을 입증하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6. 현대 인쇄문화에서의 계승
오늘날 활자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부 장인들이 전통 방식의 활자 주조를 복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시대에도 금속활자의 유산은 살아 있습니다. 활자 서체는 한글 글꼴 디자인, 캘리그래피, 아날로그 감성 콘텐츠로 재탄생되고 있으며, 활판 인쇄 체험 공간, 활자 박물관 등을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활자 문화의 중요성과 조선 활자장의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활자장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글자를 빚고 지식을 찍어낸 조선의 지식 창조자였습니다.
맺음말
- 활자장은 조선시대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가공한 장인으로, 정밀한 기술로 활판 인쇄를 가능케 한 핵심 인력이었습니다.
- 이들이 만든 금속활자는 조선의 서적 인쇄, 정보 유통, 문화 전파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오늘날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통 기술 계승과 활판문화 복원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체험삶의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을을 치유한 사람 - '약초꾼' 이야기 (0) 2025.05.11 놋그릇을 빚은 금속공예 장인 - 유기장 (0) 2025.05.10 초상화부터 병풍까지 - '화공'의 손기술 (0) 2025.05.09 조선시대 천문학자 - 관상감의 '천문원' 이야기 (0) 2025.05.08 나무로 악기를 만든 장인 - '악기장' (0) 2025.05.06 국가를 위해 종을 만든 사람 - '주물장'의 역할 (0) 2025.05.05 조선시대의 방랑 상인 - '장돌뱅이' 이야기 (0) 2025.05.04 예술과 접대의 경계선 - '기생'의 하루 (0) 202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