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5. 13.

    by. goodppls

    강인함을 보이던 거리의 스타 - 괴력의 상징 '차력사'

     

    쇠사슬을 끊고, 쇠파이프를 구부리며, 맨몸으로 벽돌을 깨는 퍼포먼스. 오늘날에도 ‘차력쇼’라 불리는 이러한 퍼포먼스는 사실 조선 말기부터 근대 초까지 '거리 예술의 정점'으로 꼽혔습니다. 이 퍼포먼스를 보여준 이들이 바로 '차력사(借力士)'입니다. 단순한 힘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고단한 삶에 위안과 흥을 주던 그들의 퍼포먼스는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차력사의 정의, 유래와 활동, 기술 구성, 사회적 상징성, 기록 속 사례, 현대 계승 문화까지 살펴봅니다.

     


     

    목차

     


     

    1. 차력사란 누구인가?

    차력사(借力士)는 ‘힘을 빌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실제로는 '근력과 기술을 통해 다양한 괴력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거리 예술가'를 뜻합니다. 이들은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초반까지 활발히 활동했으며, 주로 시장, 장터, 저잣거리, 민속축제, 단오절, 팔도장날 등에서 공연을 펼쳤습니다. 공식적인 예인(藝人) 신분은 아니었지만, 일정한 기술과 훈련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공연 후 자발적 후원금(동전, 곡식 등)을 받는 형태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랑 예인패에 소속되어 광대, 탈꾼, 곡예사 등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2. 차력사의 유래와 활동 배경

    차력의 기원은 명확하진 않지만, 중국 송나라의 '잡기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조선 후기 유랑 예술가 계층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18세기 서울 저잣거리에서 "쇠사슬을 입에 물고 끊는 자 등장"이라는 기록이 있어, 차력사의 존재가 이미 민속문화 속에 녹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차력은 고된 현실을 힘으로 극복하려는 민중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며, 특히 전쟁, 가뭄, 흉년 등 위기의 시기일수록 더 인기를 끌었던 퍼포먼스입니다. 곡예보다 더 정서적으로 '강인함'과 '희망'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 괴력 퍼포먼스의 구성과 기술

    차력쇼는 단순히 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정교한 순서, 호흡 조절, 맨몸 기술이 결합된 퍼포먼스입니다. 대표적인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망치로 이마 깨기 : 벽돌이나 타일을 이마 위에서 부수기
    • 쇠파이프 휘기 : 목이나 허벅지 힘으로 금속을 구부리기
    • 창끝 배밀기 : 날카로운 창날 위에 복부 대고 눕기
    • 차륜 끌기 : 쇠사슬로 차량이나 인력거 끌기 (근대기)
    • 물동이 들기 : 입으로 지게나 통나무 들기

    이러한 기술들은 실제 근력 외에도 '호흡법, 중심 잡기, 피부와 근육 훈련'이 병행되어야 가능한 고난도 기술입니다. 일부 차력사는 '도인술(導引術)이나 선무도'의 원리를 응용하기도 했습니다.

     

    4. 차력사의 사회적 이미지와 인기

    차력사는 민중에게 '힘의 영웅'으로 인식되었고,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둘러앉아 보는 대중 오락이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힘을 가진 '진짜 장사'로, 남성에게는 '이상적 강인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동시에 차력사는 장터의 활력소이자, 빈곤 속 웃음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동전 대신 곡식, 수공예품, 밥을 주기도 했으며, 일부 차력사는 나름의 팬층을 갖고 "이름난 장터마다 불려 다녔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인기는 조선 후기 민속놀이의 다양성과 민중 중심의 예술 문화 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5. 문헌과 풍속화 속 차력사의 모습

    차력사는 다양한 문헌과 그림 속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 <조선풍속화첩> : 장터에서 쇠파이프를 구부리는 차력사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음
    • <매천야록> : 19세기말 흥선대원군이 민간 차력사를 궁에 불러들였다는 기록 수록
    • <해동죽지> : 한양의 서커스형 거리공연 중 ‘치아로 항아리 들기’ 차력 기술 언급

    이 외에도 조선 후기 야담이나 설화에는 "힘센 장정이 장터를 휘젓는다."는 형태로 차력사와 유사한 인물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차력사가 '당대 대중적 스타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6. 현대 문화에서의 계승과 해석

    차력쇼는 현대에도 전통 서커스, 마당극, 거리 예술 속에서 계승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형태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 민속 축제 공연 : 차력사 복장과 쇼 재현 (예: 남사당놀이)
    • TV 예능·버라이어티 : '초인 쇼', '괴력 남자들' 등 오마주 콘텐츠
    • 무형문화재 극단 활동 : 전통 곡예·차력 결합 공연
    • 파크 페스티벌 : 마술·곡예사와 함께 퍼포먼스 연출

    차력사는 단지 '힘을 과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민의 삶을 위로하고, 현실을 잊게 한 신체 퍼포먼스 예술가였습니다. 오늘날의 스트리트 퍼포먼스,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극단 예술 속에서 여전히 그 '강인함의 상징성'은 유효합니다.

     


     

    맺음말

    1. 차력사는 조선 후기부터 근대 초까지 괴력 퍼포먼스로 민중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준 거리 예술가였습니다.
    2. 쇠파이프 휘기, 맨몸 타격 등 기술은 근력과 훈련이 결합된 고난도 퍼포먼스였습니다.
    3. 오늘날 민속축제, 서커스, 대중문화 속에 전통 차력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