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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죽음. 조선시대에도 죽음을 마주하는 과정은 철저하고 신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며 마지막 정리를 도맡았던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염장(殮匠)입니다. 염장은 오늘날의 장례지도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 옛 직업인으로, 전통 장례문화에서 가장 실질적이고 민감한 순간을 책임졌던 기술자이자 의례의 실무자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염장의 정의와 역할, 장례문화 속 위치, 사회적 시선, 문헌 기록, 그리고 현대와의 연결점을 상세히 살펴봅니다.
목차
1. 염장이란 누구인가?
염장(殮匠)은 죽은 이의 몸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며, 마지막 모습으로 단정하게 만드는 전통 장례의 실무자였습니다. '염(殮)'은 시신을 닦고 옷을 입히는 과정을 뜻하며, '장(匠)'은 기술자, 장인을 의미합니다. 염장은 단순히 노동자가 아닌, 죽음의 절차를 이해하고 의례를 실현하는 전문가였습니다. 보통 집안에서 직접 하기를 꺼리는 시신 접촉을 대신하며, 신체를 다루는 기술과 정결한 마음가짐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들은 마을마다 소수만 존재했으며, 특정 가문이나 지역에서 염장 일을 대대로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2. 전통 장례 절차와 염장의 역할
조선시대 장례는 철저히 유교 예법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죽음 직후부터 매장까지 여러 단계로 구성되었습니다. 염장의 역할은 주로 다음과 같은 단계에서 수행되었습니다.
- 수시(收屍) : 시신을 바로 눕히고 숨이 멎었는지 확인
- 세수(洗手) : 손과 발, 얼굴 등 시신을 정갈하게 씻김
- 염습(殮襲) : 수의를 입히고 염포(베)로 단단히 감쌈
- 입관(入棺) : 관 속에 시신을 안치하고 용기류를 함께 넣음
이 중 염습과 입관은 염장이 주도하는 핵심 절차였습니다. 특히 수의의 순서, 동작의 방향, 매듭법 등은 고인의 신분과 종교적 의미에 따라 달라졌으며, 염장은 이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의식은 간소하게 치러졌지만, 몸을 다루는 과정만큼은 매우 정교하고 엄격한 절차를 따랐습니다.
3. 염장이 사용하는 도구와 기술
염장은 몇 가지 기본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염포(殮布) : 시신을 감싸는 흰 베천
- 수의(壽衣) : 고인의 나이에 맞춰 준비된 속옷, 겉옷 세트
- 향과 숯 : 시신의 냄새를 줄이고 부패 방지
- 참빗 : 머리를 단정히 빗는 용도
- 목욕수건, 온수통, 항아리 : 시신을 닦는 데 사용
염장의 기술은 손끝에서 완성됩니다. 시신은 사후 강직으로 인해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관절을 자연스럽게 펴고 옷을 입히는 기술은 오랜 경험 없이는 하기 어려웠습니다. 매듭을 짓는 법, 시신의 자세를 단정히 만드는 방법 등은 오로지 염장만이 알고 있는 노하우였습니다. 또한 감정적 동요 없이 조용하고 정숙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죽은 이를 마치 산 자처럼 대우하는 태도가 요구되었습니다.
4. 염장의 사회적 지위와 인식
염장은 기술자였지만, 죽음을 다룬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는 낮은 계층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일부는 관청에 소속된 하급 기술직이었고, 다수는 민간에서 개인 의뢰를 받아 활동했습니다. 사람들은 염장을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꺼렸습니다. 죽음을 가까이한다는 점, 시신을 직접 만진다는 점에서 불결하다는 편견이 있었고, 그로 인해 혼인, 이웃 교류, 자녀 교육 등에서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례를 치러본 사람들은 염장의 기술과 정성에 감사하며, 봉투나 음식, 때로는 마을 잔치 음식을 함께 제공하는 등 사례하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특히 유교적 효의 관점에서는 염장을 초빙해 장례를 완성하는 것 자체가 효행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5. 문헌과 기록 속 염장의 흔적
염장에 대한 기록은 <국조오례의>, <상례비요>, <가례집람> 등 유교 장례서적 속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접 이름이 남겨지진 않았지만, "염자는..."으로 시작하는 절차 설명 속에 그 역할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시신을 오른쪽으로 눕히고, 먼저 속바지를 입히며, 매듭은 북쪽 방향으로 당긴다'는 등의 세세한 설명은 모두 염장의 행위 기준이었으며, 각 지역의 장례 예절서에도 비슷한 기술 지침이 전해집니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속 이야기에는 숙련된 염장이 귀신을 달래는 법을 알고 있었고, 무녀나 무당과 함께 장례의식에 참여한 사례도 나오며, 이는 염장이 단순 기술직을 넘어 주술적 신뢰까지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6. 현대 장례문화에서의 계승
오늘날 염장의 역할은 장례지도사, 장례 전문 업체 직원 등으로 제도화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례지도사는 국가 자격증이 있으며, 위생 교육, 감염 예방, 법률 지식 등도 함께 습득합니다. 하지만 현대 장례에서도 고인의 몸을 다루는 마지막 손길은 여전히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절차이며, 일부 유가족은 '염습 전문가'를 따로 초빙해 보다 정중한 절차를 밟기도 합니다. 또한 자연장이나 전통장례를 선호하는 흐름 속에서, 염장 기술을 현대화한 전통 장례 전문가들도 활동 중이며, 이들은 염포 매듭법, 전통 수의 입히기 등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염장은 단지 시신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존엄과 이별의 문을 지키는 장인으로 오늘날까지도 묵묵히 그 가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맺음말
- 염장은 조선시대 장례에서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담당한 전문 장례 실무자였습니다.
- 죽음을 다룬다는 이유로 사회적 인식은 낮았지만, 기술과 정성 면에서는 높은 존중을 받았습니다.
- 오늘날 장례지도사 제도 속에서 그 역할은 제도화되었고, 전통 염습은 문화유산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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